본문 바로가기

오늘, 이방인의 하루

프랑스 초등학교 선생님이 말하는 '1학년(CP) 수업 내용'

입학 첫날, 학교 생활을 위해 상담을 원한다고 이야기한 덕일까요.


등교 이틀째 되는 날 아침 만난 담임 선생님은 오늘 오후에 시간이 괜찮냐고 물어왔습니다. 


프랑스 생활, 그것도 학교에 대해선 '1도 모르는' 저희에게 망설일 이유는 없죠. 하교 시간까지 틈틈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하며 하루를 보낸 것 같아요.








드디어 오후 4시. 교문이 열리고 하교가 마무리되자 선생님은 교실로 안내했습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도, 사전 정보도 없는 상태였어선지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훅'하고 먼저 들더라고요. 


교실에 들어서자 자신의 자리부터 소개하는 아들을 보니 '이제 진정 초딩이 됐구나' 싶은 현실감도 다가왔습니다. :D




선생님은 학부모 전체와 상담이 다음주에 예정돼 있지만 그날은 프랑스어로 진행하므로 내용 전달이 어려울 것 같아 (슬프지만 현실) 


오늘 먼저 보자고 했다며 수업과 관련한 내용들을 소개해줬습니다. 



1학년(CP)에서는 대부분 글자 읽기와 간단한 덧셈, 뺄셈을 하게 되는데 그 수준은 매우 기초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말은 잘 하지만 아직 읽는 법, 즉 A의 말소리가 무엇이고, 단어 안에 끊어읽기 방법 등에 대해 다 알지 못하므로 알파벳부터 읽기 연습 등을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수업 내용을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글자를 처음부터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은 '나이스 타이밍'임이 분명했습니다.


(1년만 늦었어도 못 듣고 못 읽는 벙어리 생활 난이도는 급격히 커졌을...)



덧셈, 뺄셈의 시작은 10 더하기 5 수준? 


프랑스에 와서 급한대로 30정도까지는 익히도록 해놨는데 이 정도면 당분간 버틸 수 있겠구나 싶어 내심 마음을 놓게 됐습니다. :D




그리고 매주 목요일에는 수영 수업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영장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놀게 두는 것이 아니라 영법을 가르치는 수영을 1년동안 꾸준히 한다니 아들이 튜브없이 물에 뜨는 날이 조만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되더라고요.


그리고 교내 수영장이 없는 관계로 근처 수영장으로 가서 수업이 진행되는데 


이때 아이들의 탈·착의를 돕기 위해 학부모 중 2~3명에게 도움을 청한답니다. 


일정이 시작되고 조만간 저에게도 요청이 오면 아이의 수업 받는 모습도 보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들이 많은데 


아들의 담임 선생님은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할 것'(학교 생활이 아이들에게 매우 힘든 노동이므로), 


'미디어 노출을 많이 하지 말 것'(아이들이 상상하고 주변의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능력 혹은 여유가 줄어듦으로), 


'하교 후 아이와 함께 그날 있던 학습 관련 이야기를 나눌 것'(엄마에게 설명함으로써 아이에게 또 한번 좋은 수업이 되므로) 등의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처럼 직장 생활을 했다면 불가능해보이는 '비현실적 주문'이었지만 이제 전업맘이 됐기에 가능해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죠. :D



그리고 거의 매일 숙제를 내줄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대신 대부분 15~20분 안에 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라니 걱정은 말라고 덧붙이시더군요.


첫 숙제를 보니 알파벳 'I'가 들어간 단어 이미지를 찾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선행학습을 위한 숙제 개념이 아니라 학습을 놀이처럼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한다는 이곳 교육 방식의 일면이 떠오르는 과제였죠.






학교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일단락된 듯하여 외국인으로서 프랑스어를 학습하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먼저, 공립학교의 경우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학생에 학교에서 신고(?)를 하면 이를 토대로 스케줄을 짜서 별도의 수업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시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인 만큼 아직 시작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2주에 1회, 정규 수업 시간 중 별도로 프랑스어를 배우게 될 것이고 


이것이 아들에게는 더 효과적인 학습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틈틈이 책읽는 시간을 통해 아들에게 책을 읽어줄 것이라며 오늘 읽어준 책을 보여줬습니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오후에 선생님이 자기를 불러놓고 책을 읽어주셨다고. 


늑대와 관련된 동화였는데 단어 몇가지라도 들으며 익혔더군요. 역시 머리가 굳은 엄마와 달리 아들은 한창 스폰지 같은 시기가 맞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외국 학생을 맡아본 경험이 이전에도 있었다는 말에 마음이 크게 놓였습니다.


사실 저희가 처음 학교 등록을 위해 교장 선생님과 면담하던 당시 프랑스어를 못하는 바람에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급 좌절했었는데.


우리의 '미천함'을 직접 본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고 경험이 풍부한 선생님을 담임으로 배정해준 것 같아 '전화위복'스러운 결말에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선생님은 프랑스어를 배우는 데에는  아이마다 차이가 날 것이라며 집에서 이곳 유치원 아이들이 보는 단어 그림책 등을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아이들을 함께 기른다는 개념에서


보통 2년간 담임을 이어가는 것을 선호한다며


(그게 선생님 의지에 따라 가능한 것 같더라고요)


자신이 아들을 계속 맡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상담은 1시간 반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이 정도면 특혜 수준...꺅.ㅎ


저녁 무렵이 돼서야 학교를 나오며 아들에게도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내용들을 전했습니다. 


아들도 다행히 마음을 조금 놓는 듯 보였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학교 생활 시작이구나' 싶은 생각에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