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이방인의 하루

[출산후기] 프랑스의 산파, 무통주사, 그리고...

오늘은 둘째 아이를 출산한지 딱 3.7일이 되는 날입니다.

임신 중기부터 조산 이야기가 있었고 12월말에 강도 높은 가진통을 겪었던 터라

38주까지 견딘 것(?)만도 다행이긴 해요. 

 

출산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불시에 조짐이 찾아왔고 

1월 7일 저녁 병원으로 가서 다음날인 8일 새벽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확실히 초산보다 진행속도가 더 빨랐기도 했지만 

진통을 생으로 겪으며 내가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겠다고 너무 쉽게 결정했구나 하고 후회를 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사실 출산 당일까지 진통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첫째를 낳을 때 미국에서 워낙 무통주사(에피듀럴) 효과를 톡톡히 봤고, 

원할 때 무통을 맞을 수 있다던 출산병원 마취과 의사의 말을 들은 이후 실낱같던 우려마저 놓았었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참담한 배신을 당했지만. 흑흑.

 

 

==========================================================================

 

 

출산 후기를 정리해보자면, 

 

당일 저녁 5시 반경, 약간의 출혈이 있었기에 병원에 확인 전화 후 짐을 부랴부랴 싸서 8시 정각,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출혈이 출산 조짐인지 검사를 진행하던 샤쥬팜(산파)은 긴가민가하며 오늘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날 처음 병원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었든지와 상관없이 시시각각 몸의 변화는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사실 병원 도착 후 8시반 부터 10시반까지 진행한 검사라고는

태동 검사와 아이 심박 측정기를 달아놓았던 것 외에는 딱히 없었어요. 

 

그러다가 10시 반 쯤 양수가 터진거죠.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지 몰라 함께 따라왔던 큰 아이를 급히 이웃에게 위탁 보내고

진단실에 다시 돌아와 태동 측정기를 단 채 누워있는데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맞아요. 지금까지 있던 진통보다는 확실히 빠르고 강해졌습니다.

 

일단 측정기를 밖에서 모니터링하고 있을 것이라는 샤쥬팜의 말을 믿고 기다렸죠.

그래프는 점차 요동치며 진행속도가 확실히 빨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샤쥬팜은 감감무소식. 

 

짙어져오는 진통의 그림자에 마음이 급해진 저는 참다 못해 콜 버튼을 눌러 무통을 언제 맞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세상 침착한 샤쥬팜은 진행 상황을 확인하더니 이미 자궁이 5~6센티 열렸다고 하더군요.

헉. 어쩐지 너무 심하게 몰아부치더라니. 

 

그러곤 나에게 손을 내밀며 분만실로 걸어가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이미 골반이 부서지는 느낌이 1, 2분 간격으로 몰아치는데 휠체어 하나 없이 저를 끌고 분만실로 이동했습니다. 

 

한걸음 걷고 서고, 한걸음 걷고 서고...

 

어떻게 간지 기억도 안나고 이미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분만실에 들어서서 분만실 모습을 눈뜨고 보지도 못한 것 같아요. 

 

침대에 가까스로 몸을 걸친 저를 출산용 옷으로 갈아입히더니 그때 쯤 마취과에 콜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분만 전담 샤쥬팜이라면 제 진행속도가 빠르다는 걸 충분히 감지하고 빨리 조치할 수 있었을텐데

이들에게 나의 진통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유명한, 트럭이 골반을 밟고 지나가기를 수십 차례, 이후 비행기가 밟고 가기를 수십 차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취과 의사는 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무통 맞을 준비를 시킨다며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저를 앉혀 놓고는

손목에 주사 바늘을 찔러대기 시작했어요. 

 

앉은 자세로 침대 매트리스를 움켜 잡는 것으로 겨우 버텼는데

주사를 놓는다고 곳곳을 찔러대는 바람에 그나마 의지할 곳마저 없어지더군요.

 

몸은 바들바들 떨려오고 애초부터 비명은 지를 여력조차 없고....

(드라마에서 출산할 때 비명지르는 것은 정말 연기이지 싶어요. 아프면... 소리도 안나옵니다..ㅠ) 

 

그 와중에 샤쥬팜이 계속 호흡을 유도하며 '후~~~~~~~' 하고,

'트헤비앙(Tres bien)'을 속삭이는데 

음.. 제가 평소에 평정심을 상당히 잘 유지하는 편임에도

정말 오랜만에 떠오르는 별별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날아다녔습니다.

 

약 (느낌상) 500번째 비행기가 골반에서 막 이륙할 때 쯤 겨우 입을 떼 남편에게 '의사는 언제와 대체..' 하고

한마디 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제가 처음 무통을 맞을 수 있느냐고 물었던 시간부터 실제 맞기까지 한시간 반 이상이 걸렸고, 

 

앉은 채로 골반이 부서지는 느낌, 아이가 밀고 나오려는 압박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습니다. 

 

무통 주사요? 맞긴 맞았죠. 

 

허리에 꽂자마자 바로 누워서 힘주기를 시작해 아이를 낳았지만 맞은 것은 맞은 것이죠..

 

그 시간 속에 정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프랑스의 일처리가 뭐든지 빠르지 않은 건 알았지만

병원에서 출산하는 과정에서까지 느릴 것을 상상치 못한 내가 어리석었음을.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 초음파 담당 의사를 불러오겠다던 샤쥬팜의 콜을 받고

 한시간이 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던 의사를 봤을 때 

이들의 실체를 더 빨리 짐작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안이했다는 사실을.   

 

아마 진통 시간이 좀 더 길게 쉼없이 휘몰아쳤다면 머릿 속에 떠다니던 단어를 결국 입밖에 내뱉고 말았을텐데

다행히도 아이가 그 전에 나와주었습니다.

 

참 신기하죠. 

 

2초전까지 죽을 것 같이 아프고 힘주느라 몸이 떨리던 건 어디로 간건지. 

따뜻한 느낌의 무언가가 쭉 빠져나오는 동시에 들려온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소리내서 웃어버리고 말았어요.

 

나오자마자 제 배 위에 올려진 아이를 마주하는데 두번째인데도 신기하기 그지없는 순간이더라고요. 

특히 첫째 아이와 너무 닮은 모습에 더 많은 느낌이 교차했어요.

 

회복하는 동안 두시간 가량 분만실에서 더 머문 뒤 입원실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또 한번 프랑스에서의 출산에 대해 실감하는 날들이 시작됐습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