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9월 첫째주가 시작됐습니다. 온몸으로 느낄 만큼 시원해진 기온에 아침 저녁으로는 외투를 걸친 사람들의 모습이 부쩍 늘어난 요즘입니다.
9월의 시작과 함께 저희집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바로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입니다.
이곳에 온지 두달여 만에 실전 중의 실전인 아들의 학교 생활이 시작된 만큼 더없이 긴장되는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거주지를 기점으로 도보로 통학 가능한 공립학교에 배정되는 시스템에 따라 저희 아들 역시 집에서 약 6~7분 거리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이곳은 한국처럼 별도의 입학식 없이 바로 '실전' 투입이라더군요. 입학 첫날부터 아들에게는 힘든 하루가 예상됩니다.
학교 정문 앞에는 이미 도착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가득합니다. 등교 시간인 8시 20분이 되자 정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줄지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교문 앞에서 바로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부모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학교도 있다고 하는데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내부에 운동장(?) 비슷한 공터가 있어서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유리창을 보니 각 반 배정 결과가 붙어 있고, 1학년(CP)인 아들의 이름도 한 곳에서 찾아냈습니다.
1년간 함께 생활하게 될 학생 수는 총 27명.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20명 정도가 정원인데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학급수가 줄면서 인원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은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긴장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본래 어디서나 씩씩하고 적극적인 아이인데 교실로 들어갈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ㅠㅠ
통하지 않는 언어의 장벽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아들 뿐이 아니었습니다.
" Je ne parler pas francaise(나는 프랑스어를 하지 못합니다)"를 달고 사는 남편과
시원스쿨로 벼락치기를 하고 있지만 겨우 한문장을 만들어 질문을 던져봐도 돌아오는 답을 알아들을 길 없는 저에게 선생님과의 소통은 걱정꺼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겠죠. 선생님이 우리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랑스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르노블이 파리에 이어 프랑스에서 영어 구사자가 두번째로 많은 도시라고 하는데도 저희는 숨쉬듯 언어장벽을 느끼고 있는 터라.
그런 중에 아들 담임 선생님이 영어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주니 어찌나 반갑던지!
개학날 답게 분주한 분위기였기에 짧은 인사와 몇마디만 나눴지만 마음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아이들 출석체크가 마무리되자 부모들이 퇴장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들을 향해 "잘 놀고 와!" 라는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죠.
잘 알려진대로 프랑스 학교들의 점심시간은 2시간.
집에 와서 다양한 '입학 안부' 등에 회신을 보내고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한 뒤 픽업 시간인 11시 30분에 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보낸 3시간 가량은 어땠을까.
학교에서 나온 아들의 첫마디는 "공부를 엄청 많이 해!" 였습니다.
인터넷 어디선가 프랑스 학교는 한국보다 쉬는 시간이 길다고 읽었던 기억에 기대어 "프랑스는 한국처럼 공부 많이 안 시키니까 가서 놀면 된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었는데
아들이 마주한 현실은 배신감 자체였던 듯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감 + 말을 알아듣지 못하며 이리 저리 눈치만 봐야 했을 아들이기에 모든 게 수업처럼 느껴졌으려니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오전 등교 후 점심시간 전까지 쉬는 시간이 10시 10분에서 10시 30분까지 20분 단 한번이라고 하더라고요.
(미안해 아들. 엄마도 몰랐어...)
계속 공부만 해서 물도 못 먹겠다는 아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ㅠ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은 외마디처럼 "아, 이런 게 학교 다녀온 기분이구나. 참 힘드네" 하곤 쇼파에 몸을 뉘였습니다.
그나마 착해보이는 친구가 있어 그 아이 손을 꼭 잡고 다녔다면서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성과(?)로 꼽더라고요.
안쓰러움도 크고, 대견함도 크고. 앞으로 혼자 헤쳐나가야 할 세상과 첫 만남을 마친 아들을 바라보며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모든 것이 그러하듯, 시간이 흐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진리가 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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