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코로나 감금생활 일기 7.>
감금생활 27일차.
내가 프랑스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하는 일이 생길 줄이야.
휴교기간이 길어지면서 지난주부터 담임 역량에 따른 화상수업이 시작됐다.
아들은 오랜만에 선생님과 친구들을 화면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긴장이 뒤섞인 표정. 백분이해 ㅎ
화면은 기본적으로 선생님만 노출되고 수업 중 '손들기' 버튼을 누른 학생에 한해
선생님이 발언권을 부여하면 해당 학생의 영상이 표출된다.
그런데 선생님이 어떤 내용으로 수업 하실지 궁금했던 나에게 의외의 충격을 준 건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선생님의 수업 방식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며 질문에 답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손든 아이 모두가 정답을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답을 맞추는 것보다는 수업에 직접 참여하고 선생님의 거듭된 설명을 통해 정확한 내용을 알고자 하는 모습이랄까.
정작 아들은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틀릴 것에 대한 걱정에 선뜻 '손들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모든 엄마들의 래퍼토리 "틀려도 괜찮다"를 반복했지만
불완전한 프랑스어 구사에 대한 불안과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들은 극구 반대했다.
그 버튼이 뭐라고 '눌러봐라', '안된다' 씨름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그리고 이어진 산수 시간. 프랑스어야 백번양호한다지만 수 계산에서까지 뒤쳐질 수 없는 노릇.
암산에 대한 아들의 흥미와 엄마의 극성이 합쳐져 우리는 드디어 '손들기'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이게 뭐라고 누른 순간부터 아들과 둘이 손을 맞잡고 큭큭킥킥.ㅎ
그런데 기껏 누르고 보니 먼저 손든 학생 수만 10명.
아들은 계속 되는 오답 행진만 바라보다 결국 발표 기회는 얻지 못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다음 번에는 좀 더 빨리 눌러보겠다는 아들.
그래, 바로 이거지ㅋ
내일 수업은 오후 2시. 그 전까지 부여된 과제들을 해결하고 문제를 내고 답을 찾는 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렇게 홈스쿨링 두달만 더하다간 늙어죽겠다 했는데
오늘 저녁 마크롱 대통령이 5월 11일부터 학교 등교를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하니
덜컥 늙어죽더라도 홈스쿨링이 안전할텐데 싶은 이중인격엄마.
여태도 없는 마스크를 한달 후부터 지급하겠다는 말도 못미덥고
이동제한령이 풀리는 순간 뛰쳐나올 사람들도 못 미덥고 그 상황에 애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상황도 못 미덥고.
왜 이렇게 뭣도 편치 않은건지 정말.
남은 감금생활 기간동안 꾸역꾸역 아들 발표력이나 쌓으며 위안삼아야겠다.
프랑스 초등학생 홈스쿨링 youtu.be/hHDUeelwxRo
<프랑스 코로나 감금생활 일기 8.>
감금생활 36일차.
둘째와 함께 산책을 나간 건 역시 36일만이다.
이동제한령이 시작된 이후 장보는 것을 제외한 어떠한 외출도 하지 않은 탓이다.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자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이렇게 외출할 '용기'를 낸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우리 동네가 프랑스에서는 그나마 확진자 수가 적은 (물론 '확진자'수일 뿐이다) 안전한 곳이라는
통계가 나오고 있으며 언제까지 아이를 안에 가둬두기엔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 인식,
그리고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마스크 덕이다.
속을 끓이고 계신 부모님의 염려를 덜어줄 수 있을 만큼의 일회용 마스크는 한국에서 유출이 불가능한 터.
몇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직접 만든 면마스크, 그리고 필터 묶음을 보내주셨다.
(나의 수영복 마스크는 이제 안녕ㅋ)
둘째가 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요즘 들어 "예쁘다"는 말을 인지하기 시작한 덕에
집에서 마스크를 씌우고 며칠간 칭찬을 쏟아줬더니, 역시. 효과가 있었다.
산책은 1시간 이내, 거주지 반경 1km내에서 가능하다. 목적지는 아들 학교 옆 공원.
아들 픽업을 위해, 마트를 가기 위해 매일 수차례 오가던 길인데 이렇게 넷이 걷는게 왜 이렇게 새삼스러운건지.
공원에 도착해 유모차에서 내린 둘째가 처음에 주춤대다가 이내 한참을 걷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미안하고 찡한 기분이 들었다.
민들레 씨를 흩날리며 동생에게 함께 불어보라고 소곤대는 아들을 바라보며
일상이라는 것,
당연한 듯 누리던 것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가 찌릿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 외출은 언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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