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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방인의 하루

'슬기로운 봉쇄생활' 프랑스에도 가을이 왔어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득실대고

봉쇄로 인해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프랑스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가을. 달력을 보고 있자니 정말 올해는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네요.ㅜ

 

 

사실 봉쇄 이후 생활에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안한 느낌?

 

제 일상 중 단면만 보더라도 

봉쇄 이후에 더 열심히 매일 산책을 나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저희집 위치가 도심 한 가운데인지라

봉쇄 전에는 현관문만 나가도 거리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꺼려져

아이들과 거의 집순이 생활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봉쇄로 인해 유동인구가 기존보다 줄어들면서

제가 느끼는 부담도 한결 줄어든거죠.

 

 

두돌이 가까워지면서 부쩍 활동량이 많아진 둘째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아들이 코로나 이후에 몸무게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실내 활동으로는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어느덧 프랑스에서 보내는 세번째 가을. 

솔직히 그동안은 이곳의 가을이 예쁘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었습니다.

설악산, 지리산 등 한국의 가을 단풍이 너무 예쁘잖아요.ㅜㅠ ㅎㅎ

 

 

물론 그르노블은 어디를 바라봐도 시선의 끝에 산이 걸릴 만큼 

많은 산들로 둘러쌓여 있는 도시죠.

하지만 그에 비해 산에 단풍나무들이 없어서인지 가을 색이 약간 밋밋한 느낌이랄까요.

차라리 눈덮인 겨울엔 훨씬 멋있고 웅장한 기운을 뿜어내죠.

 

 

그런데 요즘 오전마다 집 주변(산책 가능거리=거주지 1km 제한)을 배회하다보니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도 모르게 매일 자꾸 낙엽을 줍줍해서 유모차에 싣고 있고

어느 각도로 보아도 운치있는 듯한 앵글에

아이들 사진을 자꾸 찍게 되더라고요.

 

문득 생각해봤습니다.

왜 이렇게 가을이 예쁘지? 

뭐가 달라진 거지?

 

어쩌면 가을에는 모름지기 단풍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저만의 정형화된 생각이

그동안 이 곳의 가을을 즐기는 걸 방해한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뭔가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보다는

내가 알고 있던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편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그리고, 매일 이렇게 '가을 가을'하며 다닐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걸음 닿는 곳 어디든 넉넉히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빌딩들 사이에서도 당연한 듯 제자리를 지키며 서있는 수많은 나무들.

그 나무들도 겨울을 앞두고

묵묵히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매일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들과 함께

책갈피마다 주워온 낙엽을 끼워넣는 것으로

오전 일정의 마무리를 합니다.

 

 

나중에 아들이 이 책들을 펴볼 때마다

오늘 이 가을의 향기가 떠오르길,

 

그래서 어디서 새로운 가을을 마주하더라도

또다른 다양한 가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